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애플 CEO 팀 쿡(Tim Cook) 조용한 소통과 흡수의 리더십(매일경제)

성과를 내는 CEO에게 세상은 새로운 리더십 이름을 붙여주는 것 같습니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애플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후계자 팀 쿡 CEO이 그 우려를 일축하고 애플을 반석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찾아가는 혁신은 팀 쿡의 소통과 흡수의 리더십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리더십의 모습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팀 쿡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문적 활동이 있겠다고 예상하게 됩니다.
조용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혁신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또 다른 유형의 리더를 보며 소통의 중요성을 생각합니다.
제가 팀 쿡의 리더십 이름을 짓는다면 외유내강형 리더십이 아닐까 합니다.

애플 CEO 팀 쿡(Tim Cook) 조용한 소통과 흡수의 리더십

팀 쿡은 2011년 8월24일 스티브 잡스에 의해 애플 이사회에서 CEO로 임명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왕관을 팀 쿡에게 전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팀 쿡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치 않았다. 의구심 가득한 눈길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팀 쿡은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리더십을 전파하려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애플의 혁신을 지속했다.

찾아가는, 즉 현장을 지배한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서 팀 쿡은 자신을 찾아오게 만드는 '흡수의 리더십'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조용한 혁신

2017년 6월29일은 아이폰 탄생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개발을 세상에 알린 5개월 뒤 판매가 시작되었다. 전문가들의 평은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이 단순한 기기가 시장에서 약 100만대만 팔려도 대성공일 것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아이폰은 세상을 바꾸었다. 지난 10년간 아이폰은 약 13억대가 팔렸으며 애플에게 무려 9000조원의 매출을 안겨주었다. 그뿐이 아니다. 아이폰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었다. 앱 스토어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IT라이프스타일 생태계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한 손에 들어와 손가락 하나로 제어되는 기계에 열광했다. 아이폰 탄생의 주역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이후 그가 만드는 것은 IT의 기준이 되었고 그가 하는 말은 마치 경전처럼 애플과 전 세계를 지배했다. 아이폰은 세상을 바꾸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였다. '그깟 전화기 하나 더 나왔네'라고 아이폰을 무시하고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던 노키아, 모토로라는 찬란한 영광을 뒤로 한 채 무대에서 사라졌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삼성전자만이 막강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이폰의 뒤를 쫓아 Big2를 형성할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은 애플의 전성시대였다.

'애플의 교주' 스티브 잡스는 괴팍한 성격과 일중독, 혁신의 전도사로서 애플과 아이폰을 이끌었다. "나는 안드로이드와 핵전쟁도 불사하겠다." 스티브 잡스는 주변의 모든 것을 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럼에도 애플은 건재했다. 스티브 잡스의 "우리는 시장이 기다리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이것을 사용해보라고 시장에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를 여는 것이다"라는 '자신감 가득 찬 말'처럼 애플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애플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후발 기업이 애플을 위협한 것도, 애플의 제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애플의 리더 스티브 잡스의 부재였다. 췌장암을 앓던 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5일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IT기업과 언론은 위대한 혁신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과연 누가 애플의 새로운 선장,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인가에 주목했다.

물론 후계자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팀 쿡이다. 그는 2011년 8월24일 스티브 잡스에 의해 애플 이사회에서 CEO로 임명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왕관을 팀 쿡에게 전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팀 쿡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의구심 가득한 눈길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팀 쿡, 그가 과연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오죽하면 <뉴욕 타임즈>가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은 도산할 것이다'라는 기사를 버젓이 쓸 정도였을까.

생전의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을 다양하게 테스트했다. 2009년 본인이 6개월 간 병 치료를 위해 애플을 떠났을 때도, 그리고 2011년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스티브 잡스를 대신한 것은 팀 쿡이었다. 잡스는 팀 쿡을 신뢰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과 다른 리더십을 갖춘 팀 쿡이 애플의 차기를 이끄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치 전설과 신화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로 애플을 지휘했던 스티브 잡스의 선택은 의외처럼 보였다. 시장은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그는 나의 영적 파트너이다"라고 칭찬했던 조너선 아이브 등 이른바 '천재급 인물'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것이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조용하고, 설득력 있고, 열린 귀의 소유자이며 관리의 귀재인 팀 쿡에게 애플의 미래를 맡긴 것이다.

애플의 새로운 CEO 팀 쿡에 대해 시장은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팀 쿡은 제품의 개발자가 아닌 재고 관리자였다"라고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즉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공통 DNA인 '혁신'을 팀 쿡에게는 찾을 수 없다는 혹평이었다. 하지만 팀 쿡 체제 하의 애플은 조금씩 전진했다. 잡스가 숨진 뒤 혁신이 정체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애플의 세계 지배력은 더 커졌다.

2011년 애플의 매출액은 1087억 달러였고, 2016년에는 약 2300억 달러로 성장했다. 직원 수도 6만4000여명에서 11만 명으로 증가했다. 더구나 중국 시장에서 애플은 확실하게 증가했다. 매출이 45억 달러에서 무려 185억 달러로 커진 것이다.

이런 외형적인 성장만이 전부는 아니다. 애플의 현금 보유량은 759억 달러에서 약 2400억 달러로 늘었다. 그뿐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그토록 싫어하던 주주의 이익 증대를 위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이 무려 140조원에 육박했다.

반론이 있을 것이다. "사실 누가 CEO가 되었어도 애플은 성장했을 것이다"라는. 맞는 말이다. 현재 애플의 모든 것이 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유산'으로 살아가는 셈이라는 지적 역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 이래 모든 국가나 기업의 흥망성쇠에 있어 창업과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것은 '유산을 지키는 것'이다. 수많은 창업자의 후계자들이 단순해 보이는 이 리더십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런 면에서 팀 쿡은 '아직까지는 성공한 후계자'이다. 팀 쿡은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의 흔적을 급격하게 지우고 자신의 리더십을 전파하려 서두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스티브 잡스가 개설한 예금통장에서 돈만 빼내 쓴 것만도 아니다. 그는 서서히, 그러나 조용히 애플의 혁신을 지속했다. '찾아가는' 즉 현장을 지배한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서 팀 쿡은 자신을 '찾아오게' 만드는 '흡수의 리더십'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시이저의 태풍 같은 카리스마 리더십 뒤에 로마를 안정시킨 아우구스투스의 '온화한 리더십'처럼 말이다. 팀 쿡, 그는 현재 '애플의 조용한 혁신의 지배자'이다.
▶운영과 관리의 귀재, 팀 쿡

팀 쿡은 1960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로버츠데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근무했다. 성실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았던 팀 쿡은 오번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미국 명문 듀크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팀 쿡의 첫 직장은 IBM이었다. 이때가 1983년으로 그의 나이 24세 때이다. 이곳에서 팀 쿡은 경영관리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아 IBM북미총괄 본부장까지 승진했다. 팀 쿡은 세계적인 PC제조사인 컴팩의 부사장으로 회사를 옮겼다. 이때가 1997년이다. 팀 쿡은 IBM과 컴팩 등 세계적인 IT, 전자회사에서 경력을 쌓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세계 IT시장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기업의 관리자로서 역량을 키운 훈련된 예비 CEO인 것이었다.

1998년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만난 것이다. 당시 애플은 실적, 성과, 비전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팀 쿡은 애플 합류를 결정했다. 이후 그는 "나는 스티브 잡스와 만났다. 그리고 단 5분 만에 애플 합류를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애플이고,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훌륭한 결정은 애플 입사를 결심한 것이다. 그때 나는 스티브 잡스를 보고 애플에 입사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창조적인 천재, 스티브 잡스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의 능력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업무를 맡겼다. 애플은 당시 이 세상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새로운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몰두했다. 모든 연구개발 부서는 스티브 잡스의 '공포의 독촉'에 시달렸다. 스티브 잡스는 그것을 '혁신'이라 불렀다. 하지만 조직은 돌아가야 하는 것. 공급과 판매, 재고를 관리하고 이를 실적에 반영시킬 수 있는 유능한 관리자가 필요한 것이다. 팀 쿡은 이 일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그는 애플의 조직을 정예화, 단순화하는데 노력을 집중했다. 애플을 빠르고 능동적인 기병대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팀 쿡은 스티브 잡스가 개발 이외에는 다른 문제에 골머리를 앓는 일을 아예 없게 만들었다.

팀 쿡은 우선 애플의 공급망을 정비했다. 전 세계 약 100곳의 핵심 공급업체들을 꼼꼼하게 체크해 등급을 매기고 이를 24개 회사로 축소했다. 그 대신 24개의 회사들에게 애플에 공급하는 제품의 품질 유지를 전제로 많은 이익을 보장했다. 공급품 회사의 안정이 궁극적으로 애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팀 쿡의 생각이었다. 이는 단순히 원청 기업과 하청 업체의 관계가 아닌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상생하는 시스템이었다. 한마디로 팀 쿡 리더십의 하나인 '조직과 조직원이 같이 발전하는 조직'으로 애플은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팀 쿡은 재고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 재고가 쌓인다는 것은 보관과 유통, 생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투입된다는 것이 그의 경영 진단이었다. 19개의 비품 창고를 10개로 줄였다. 공간을 없애는 것이 재고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팀 쿡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98년 9월, 팀 쿡은 재고를 56일치로 줄였다. 그리고 1999년에는 애플의 재고는 2일치 밖에 없었다. 안정된 부품의 공급 면에서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팀 쿡의 판단이 맞았다. 재고를 줄이면서 애플은 기기 생산 공정의 단축으로 인한 비용을 절감시켰다. 무엇보다 기기들은 재고품 대신 새로운 개발품으로 대체되면서 자체적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소비자들은 애플의 똑같은 제품을 받았지만 이는 매일 기술적 진보를 한 신형인 셈이었다. 한마디로 팀 쿡은 운영과 관리의 귀재였다.
▶신화적 존재 잡스의 유산을 승계하다

스티브 잡스는 팀 쿡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관리에서 능력을 입증한 팀 쿡이 과연 제품 영업에도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한 것이다. 2002년 팀 쿡은 애플의 글로벌 영업파트 책임자가 되었다. 팀 쿡은 잡스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요란스럽지 않게 팀 쿡은 애플의 매출은 물론 판매망을 확대시켰다. 2004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잠시 떠났다. 췌장암이 발견된 스티브 잡스가 수술을 위해 두 달간 자리를 비운 것이다. 잡스는 이 두 달간 애플을 이끌 임시 수장으로 팀 쿡을 지명했다. 팀 쿡은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권력에 도전하지 않았다. 조용한 리더십으로 스티브 잡스 부재의 조직을 안정시키는데 주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또 다른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2005년 팀 쿡은 애플의 2인자가 되었다. 최고운영책임자, COO가 된 것이다. 이는 상당히 의미 있는 발탁이었다. 당시만 해도 애플 내부에서는 물론, IT업계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던 '포스트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 반열에 팀 쿡이 올라선 것이다. 또한 애플의 지배자 스티브 잡스가 공식적으로 팀 쿡의 능력과 권위를 인정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신뢰가 간다. 나와 같은 비전을 갖고 있으며 함께 있으면 시너지가 발생한다. 또한 나는 그가 옆에 있으면 많은 말을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다"고 팀 쿡을 평가했다.

2년 뒤 2007년 애플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반향은 컸다. 'IT업계는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는 말을 낳을 정도였다. 애플은 그야말로 세계의 돈을 긁어모았다. 당시까지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하던 모토로라, 노키아 등은 거의 파산에 직면했고 삼성전자 또한 '빠른 추격자'로 변신하기까지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입해야 했다. 아이폰은 한마디로 혁신이었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마음껏 자신의 상상과 기술을 펼쳐놓는 세상이 된 것이다. 더구나 기기는 인간의 직관에 가장 적확하게 세팅 되었다. 그야말로 스티브 잡스의 표현대로 '한 손에 들어오는 세상'을 구현한 것이다.

팀 쿡의 경영 능력이 발휘되었다. 애플은 매출에서도 타 기업을 압도했지만 특히 영업이익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무려 23%가 넘는 이익률을 통해 애플의 기업가치, 주가, 시가총액,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게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스티브 잡스의 췌장암은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시간을 늦추는 정도였다. 스티브 잡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언론과 IT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세상은 서서히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5일, IT업계의 신화적인 존재 스티브 잡스가 숨을 거두었다. 언론은 애도 기사와 함께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이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제부터 애플은 후계자 리스크에 빠졌다'는 기사를 연신 내보냈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의 공식 후계자 팀 쿡에 대해 "팀 쿡은 애플의 제품 생산을 관리하는 책임자일 뿐"이라고 그의 능력을 평가절하했다.

팀 쿡은 유례없는 조건을 갖추고 취임한 책임자이다. 애플이라는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충성스런 사용자, 그리고 막대한 매출과 현금을 물려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애플=스티브 잡스'라는 세상의 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정형화된 편견'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스티브 잡스의 유산이었다. 물론 스티브 잡스는 죽기 얼마 전 팀 쿡에게 유언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앞으로 CEO로서 모든 결정을 할 때 '과연 스티브 잡스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를 생각하지 말라. 항상 옳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면 된다." 즉 미래의 애플에서 팀 쿡의 리더십을 마음껏 펼치라는 스티브 잡스의 CEO로서의 마지막 오더였다.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진화시키다

지금까지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표회는 축제였다. 마치 새로운 것을 나눠주는 전지전능한 'IT신'의 은총을 받는 자리를 연상시켰다. 팀 쿡이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2012년 9월 아이폰5가 출시되었다. 시장의 평가는 한마디로 혹평이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말했다. "혁신이 빠져있다." 즉 스티브 잡스의 정신이 사라진 그저 그런 제품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팀 쿡은 침묵했다. 그는 혁신에 대해, 스티브 잡스에 대해, 그리고 새로운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일일이 시장에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오로지 묵묵하게 조직을 안정시키며 정해진 스케줄대로 개발과 연구를 진행시켰다. 오히려 팀 쿡은 스티브 잡스 시절 애플에서도 들어 볼 수 없었던 애플의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발언했다. 그리고 그해 팀 쿡은 자사주 매입 배당으로 무려 450억 달러를 투자하는데 사인을 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그토록 싫어했던 일이었다. 잡스는 "배당을 높이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돈을 쓰는 것은 자본의 효율적인 사용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투자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시장이 먼저 느끼기 전에 애플은 서서히 팀 쿡에 의해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팀 쿡을 불신했다. 2013년 애플의 주가가 하락하자 언론은 "만약에 잡스가 살아있었으면 팀 쿡은 해고되었을 것이다"라고 기사를 쓰기도 했다. 더구나 '이제 애플은 CEO를 바꿔야 한다. 바로 조너선 아이브로'라는 기사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주총에서도 주주들은 팀 쿡에게 "애플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나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팀 쿡은 단호했다. "정당하고 올바르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전혀 다른 분야가 아니다. 애플이 추구하는 것은 '휴머니티'이다. 만약 이를 이해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애플의 주식을 팔아치워라"라고 평소의 팀 쿡 답지 않게 강경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팀 쿡은 중국을 찾았다. 시장 확대를 염두에 둔 방문이 아니었다. 아이폰의 OEM생산기지인 폭스콘의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방문이었다. 당시 세계 여론은 폭스콘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로 애플이 이익을 증대하고 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499달러짜리 아이패드를 조립하는 폭스콘에 애플이 지불하는 비용은 대당 겨우 12달러였다. 팀 쿡은 이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2014년 9월9일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애플 신제품 발표회가 열렸다. 팀 쿡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아이폰6를 선보였다. 아이폰6는 무엇보다 화면에서 지금까지의 애플에서 볼 수 없는 대화면을 등장시켰다. 4인치 이하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던 애플이 무려 4.7인치 화면을 선보인 것이다. 이것은 '스마트폰은 특히 애플은 한 손에서 한 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제 세상은 애플이 팀 쿡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화면 스마트폰, 그것이 혁신의 위반인지, 새로운 혁신인지에 대한 판가름은 역시 시장의 몫이었다. 아이폰6는 대히트를 쳤다. 그제서야 여론은 팀 쿡의 리더십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에는 약간의 트집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아이폰을 만들었고 팀 쿡은 그것을 현금으로 만들었다"고.

2015년 팀 쿡은 조너선 아이브를 애플의 수석부사장에서 최고디자인책임자 CDO로 승진시켰다. 한때 경쟁자에 대한 예우처럼 보이지만 이는 팀 쿡의 애플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강화시키는 조치였다. 이 인사로 그동안 조너선 아이브의 직속 기관이었던 소프트웨어 디자인 부사장 2명은 이제 팀 쿡에게 직보를 해야 하는 체계로 바꾼 것이다. 물론 권력 장악이 목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팀 쿡은 그동안 스티브 잡스라는 독재자에게 집중되었던 권한을 분산했다. 조너선 아이브는 디자인과 제품 개발의 총책임자가 되었고 필립 실러는 마케팅을, 크레이그 페러리기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권한을 받았다.

팀 쿡은 애플을 강력한 일인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리더십이 강하게 발휘된 것은 '애플의 사과'였다. 팀 쿡은 새로운 운영체계 iOS6의 오류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스티브 잡스라면 과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구글과의 오랜 전쟁도 종식시켰다. 이 또한 평소 안드로이드를 증오하던 스티브 잡스라면 있을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는 더 이상 팀 쿡이 스티브 잡스의 그림자가 아님을, 그의 유산으로 먹고사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렇게 애플은 점차 '팀 쿡화 되기' 시작했다.
▷#리더십 1 | 팀 쿡의 리더십? 휴머니티, 노블레스 오블리제

팀 쿡은 미혼이다. 아니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 "나는 동성애자이다. 현실적으로 때로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 때문에 힘들고 불편할 때도 있지만 편견을 넘어설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세상에 애플의 CEO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려 이로 인해 고민하고 외로움에 빠졌던 성적 소수자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이는 나의 프라이버시와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팀 쿡의 커밍아웃은 그가 애플의 CEO로서 일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팀 쿡 개인의 일이라고 세상은 쿨하게 받아들였다. 팀 쿡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리더로서의 역할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 에이즈 방지, 여권 신장은 물론 인간의 평등과 인권 향상을 위한 일에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투자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사회 참여를 가능케 한 기본적인 생각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70년 대 초, 팀 쿡은 앨러배마주에서 불타는 흑인의 집을 목격했다. 그 앞에는 KKK단원들이 있었고 흑인들은 절규했다. 팀 쿡은 훗날 이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 뒤부터 팀 쿡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은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행동이 필요한 가치라고 판단했다. 팀 쿡의 그런 생각들이 애플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보다 능동적인 행동을 가능케 한 것이다. 팀 쿡은 2015년에 자신의 전 재산인 약 8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환원 시기는 당시 10살인 조카가 대학교육을 마칠 때까지 지원을 하고 난 후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조카이다. 그러나 내가 죽었을 때의 세상이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 좋아지고 발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조카는 물론 그런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미래 사회가 단순히 기술적 진보뿐이 아닌 인간의 삶과 가치가 존중받는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더십2 | 찾아오게 만드는 소통과 경청 리더십

팀 쿡의 일상은 일의 연속이다. 그는 오전 4시30분이면 일어나 5시쯤이면 회사의 책상에 앉아있다. 그리고 글로벌 회의를 위해 일요일 저녁에도 일을 한다. 일중독은 팀 쿡과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두 사람 리더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통의 방향성과 배려이다. 스티브 잡스는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고 때로는 그것이 상대에게 심한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팀 쿡은 조용한 관리형으로 침착했으며 절대 자신의 목소리를 앞세우거나 높이지 않았다. 애플의 관찰자들은 이를 두고 '스티브 잡스가 신화를 창조할 때 팀 쿡은 그 뒤에서 조용히 자신의 실력을 기르고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애플은 유훈 통치의 조직이 아니다. 즉 조직은 죽은 자의 것이 아닌 현재를 만들어나가는 살아 있는 자의 것이다. 그것은 팀 쿡 초기에 사람들이 무수히 던졌던 "만약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는 역으로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다면 잡스는 왜 팀 쿡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을까?' 만약 잡스가 자신 이후에도 애플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혁신'에 두었다면 아마도 조너선 아이브를 후계자로 점찍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잡스는 자신은 아이폰을 만들고, 그 아이폰의 운영체계를 팀 쿡이 잘 유지하고 관리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잡스는 평소에도 "팀 쿡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 뒷말을 붙이면 "그 대신 팀 쿡은 제품을 가장 잘 운영하는 경영자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유산으로 먹고 사는 것이라는 말은 아마도 팀 쿡이 애플을 떠나도 들어야 할 숙명일 것이다. 팀 쿡은 이미 이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그는 애플의 다양한 사회 참여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 또한 소비자, 투자자, 직원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요구와 주장들을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정해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안겨주고 있다.

팀 쿡은 굉장한 용기를 갖고 있는 리더이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낮출 수 있는 용기, 세상이 자신과 스티브 잡스를 비교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이미, 충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용한 소통과 경청을 앞세운 리더십의 모습이다.

얼마 전 팀 쿡은 중국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팀 쿡은 "애플이 추구하는 것은 '이런 제품이 없었을 때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살았지'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 나와 애플은 미래를 생각하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계속 혁신할 것이다."

똑같지 않은가. 스티브 잡스의 생각이나 말과. '리더는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부하를 선호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유전자는 똑같지만 다른 버전의 리더라는 생각이 든다. 팀 쿡, 그는 지금도 진행형인 조용한 리더십의 주인공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칼럼니스트) 사진 애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89호 (17.08.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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